단편적 이야기의 위험성

Danger of a single story (Chimamanda Ngozi Adichie)

 

저는 이 테드 강연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멋진 아이디어와, 위대한 통찰, 인생의 메시지로 삶을 교훈들이 담긴 수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요. 강연자 치마만다는 (이렇게 발음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싱글 스토리,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국과 같은 지배적인 국가나 사회, 개인의 힘에 의해 전달되는 단편적인 이야기, 전체가 아닌 한 가지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우리의 균형 잡힌 인식을 저해하고 편견에 빠지게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사진 한 장이 만들어낸 재앙의 아프리카

 

여러분들은 아프리카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오랫동안 아프리카라고 하면 저는 메마른 땅과 사막, 초원의 동물들, 굶어 죽는 아이들, 에이즈, 내란, 끔찍한 범죄율 이런 것들을 떠올리고는 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어온 온갖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했기 때문이죠. TV를 보고 있으면 종종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한 기금모음 광고들이 너무나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주었고, 아프리카에 퍼져있는 에이즈의 심각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가장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유명한 사진, "수단의 굶주린 소녀"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입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앙상한 아이를 독수리가 노리고 있는 사진이죠.

 

Carter, K. (1993).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Retrieved from https://en.wikipedia.org/wiki/File:Kevin-Carter-Child-Vulture-Sudan.jpg

Original Reference (원본사진 출처):

Cater, K. (Photographer). (1993, March 26).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Photograph]. The New York Times, p.3.

*The purpose of use is to support a discussion of this work in this blog post, specifically to advocate how a single story can form and spread a stereotype, which is the main topic of  "danger of a single story" lectured by Chimamanda Adichie in TED Global 2009.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는 (Kevin Cater) 남아공의 사진작가로 1993년 3월 뉴욕타임스에 이 사진이 실린 이후 엄청난 유명세와 함께 거센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왜 돕지 않고 사진이나 찍어댔냐는 비난이었죠. 그러나 실제로 작가는 사진 찍은 직후 독수리를 쫓아내고 소녀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도 당장 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었지요.

 

사진이 실린 다음 해 1994년, 케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상을 받은 두 달 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작가는 사망하였으나 사후 50년간 저작권이 남아있는 사진이라 여기에 올려두어도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사진이 얼마나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는지는 둘째치고 (수단의 기근 문제, 언론보도윤리 문제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의 아프리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이 사진이 어떻게 실렸었는지 아카이브 되어 있으니 아래 링크로 가서 확인해보세요): 

archive.nytimes.com/www.nytimes.com/imagepages/2017/03/03/world/middleeast/05southsudan-carter.html

 

한 번이라도 아프리카의 관광지나 부촌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저 한 장의 사진으로 대변되는 재앙의 아프리카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단편적 모습인지, 그것이 얼마나 그곳의 문명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노력, 인간성을 폄하하는 고정관념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제 대학 선배 중 한 명이 남아공에 혼자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저는 어떻게 그리 강도, 살인, 강간이 판치는 위험한 곳에 혼자 여행을 갈 수 있냐고 물었지만 (심지어 여자 선배였기에), 선배는 웃으며 이야기하더군요. "가봐. 가보고 얘기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야." 

 

 

지각 몇 번에 게으른 인간으로 낙인찍힌 그녀.

국가든 사람이든,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측면만 강조된 이미지에 노출되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왜곡된 현실이 자리 잡아 버립니다. 그리고 그 왜곡된 현실을 진짜 현실에 투영하기 시작하죠. 제 대학시절, 참 성실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과목을 수강했던 선배는 그 수업 직전까지 다른 학과 수업이 있었어요. 그리고 강의동이 좀 멀어서 열심히 뛰어도 몇 분씩 지각할 수밖에 없었죠. 불행히도 우리 수업을 맡은 교수님은 그게 참 거슬렸는지, 사정을 알고도 그 선배를 대놓고 게으른 OO이 라고 부르더군요. 사정을 모르는 다른 학생들은 그런 교수님의 말에 영향을 받아서 다들 그 선배에 대해 게으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온갖 팀플이나 과제에서 제외시키려고 했던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보는 제가 더 억울하더라고요.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이 뭔지 아시나요? 그렇게 활기가 넘치고 성실했던 그 선배는, 그 학기를 거치면서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지배적인 위치였던 교수의 언행을 통해 뿌려진 "게으른 사람"이라는 낙인과 편견은 쉬이 걷히지 않았어요. 자신이 정말 누구인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대하자, 어리고 여렸던 그녀는 투쟁을 포기해버린 것이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고, 의기소침해지면서 "정말 내가 원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가 저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라면서 역으로 타인이 만든 이미지로 자신을 재형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대하고 기대받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이렇게 부정적인 서클을 그리기도 하더군요.   

 

사람도, 사람이 사는 세상도, 말하고 기대하는대로 형성되기에 편견이 무서운 것입니다. 

 

동등한 관계에서 사람과 세상 그대로를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싱글 스토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단편적 이야기는 편견을 퍼뜨리고, 사람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지요. 그래서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듣고, 보고,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결국 우리 모두가 동등하고 비슷한 점이 더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연자 치마만다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보는 타인, 다른 나라의 한 가지 모습과 한 가지 이야기에 사로잡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 편견은 폭력이고, 그들의 진정한 발전 가능성을 배제해버리는 일이니까요.

 

- 엔그램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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